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
웹툰 [사사똑]의 희남은 이분화 됐다.
AI로 이성적, 영혼은 감각적인
두 모습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다고 하는 '인간성'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행위자보다
전인적 행위자*일 때가 더 가깝다.
*인간을 단순히 기능적인 존재가 아닌,
신체적, 인지적, 감정적, 사회적 측면이
통합된 '온전한 인격체(Whole Person)'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상호작용하는 주체적 개인
우리의 본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결말에 다가가게 되기 때문이다.
사고만 하는 인간의 실패상은
웹툰 [머니게임] / [파이게임]에서 볼 수 있다.
밀실에 고립된 인간들이 오직 상금을
위해 협력과 배신을 저울질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각박한 환경에서 손익만
따지다 보니 도덕도, 감정도, 유대감도
비합리적인 손실로 취급되지만,
그 선택으로 이 인간들은 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각을 지운 계산은 자신을 잡아먹는다.
감정을 오류로 처리하면 판단은 오히려 더 왜곡된다.
가장 이성적이려고 했던 선택이
가장 비합리적인 결말을 맞는다.
사사똑에서 인격이 분리된 희남도 마찬가지다.
빠진 절반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인간은 신체적 한계와 감정적 에너지의 제약이
있고 그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게 설계됐다.
무기력함, 불안, 거부감은 의지력의 부재가 아니다.
쉼을 갖게 하고, 사람들과 연결되게 만든다.
이 행동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다른 생각을 불어주기도 한다.
진짜 합리적인 행위자는 감각을 지운 게 아니다.
감각을 계산식 안으로 끌어들인 전인적 인간이다.
두 가지가 공존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감정을 실패로 규정하고 이를 반복하는 일은
성공한 이성만을 나라고 믿는 오만 때문이다.
더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해서,
더 차갑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실패의 반복으로 웅크린 채 떨고 있는 불안한 마음까지
기꺼이 '나의 진짜 일부'로 인정하고 껴안아 돌봐야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각박함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한다.
무너진 인간을 일으키는 것이 감사일기와 감정일기인
이유는 바로 감정 또한 돌보고 중요하게 여겨야
인간이 진짜 인간에 가까운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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